큐레이터의 메세지: 다음 페이지는 캐시 라벨(Cassie LaBelle)이 쓴 훌륭한 글에서 발췌한 것으로, 허가를 받고 재공유되었습니다. 미디움(Medium)에서 그녀가 쓴 글을 더 읽어볼 수 있습니다.
제가 트랜스젠더일까요?
제가 제 젠더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 저는 이런 한가한 공상을 하곤 했습니다. 그 공상에서는 제 가장 친한 숙녀 친구 중 한 명이 제게 다가와서는 말합니다. “포기해, 너는 아무도 속이지 못하고 있어.”
만약 그 당시 누군가 그 공상에 대해 제가 따져 물었더라도, 제가 "너는 아무도 속이지 못하고 있어."라고 말한 정확한 의도를 설명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이 내용이 아마도 젠더와 연관돼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제 입은 그런 단어들을 내뱉지 못했을 것입니다. 단지 제가 아닌 누군가인 척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아주 모호하고, 수동적이며, 순간적으로 알고 있었다는 것 뿐입니다.
제가 트랜스여성으로서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커밍아웃이라는 긴 과정을 시작했을 때, 제가 바랬던 것은 누군가가 이미 알고 있었다고 말해주는 것 단 하나뿐이었습니다. "네가 알아내서 정말 기뻐"라고 감격해서 말해주길 바랐습니다. “난 진작부터 알고 있었어. 너무 분명했거든. 누군가 네가 소년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는게 오히려 이해가 안 돼. 네가 마침내 너의 진정한 모습으로 살 수 있게 돼서 정말 기뻐.”
하지만 그 누구도 저에게 그렇게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제 커밍아웃 과정은 성공적이었고, 제 친구들 대부분은 지지하여 주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갈망했던 외부의 인정은 결코 받지 못했습니다. 제 친구들과 가족들은 제가 트랜스젠더라고 말했기 때문에 트랜스젠더로 받아들였을 뿐입니다. 그들은 제가 거의 존재하지도 않는, 남자의 맞지 않는 코스튬을 입고 지난 20년을 보내왔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제 친한 친구인 릴리는 에그 프라임 디렉티브(Egg Prime Directive) 라는 단어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단어는 트랜스인 사이에서 누군가 자신의 젠더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면 그 사람이 트랜스젠더인지 아닌지 말하지 않는다는 암묵적 동의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누군가에게 단순히 그 사람이 트랜스젠더라고 말해 버리면, 부정할 여지를 열어 주게 되고, 내면화된 트랜스혐오가 쌓아놓은 방어 기제를 작동시켜버립니다. 이는 그 사람을 더 깊이 벽장 속으로 밀어넣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심지어 노골적인 트랜스혐오자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자신이 그저 심리적으로 조종당했거나 속았을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무의식이 자신의 불쾌감을 거부할 여지를 남기게 됩니다. 훨씬 더 효과적인 전략으로는 자신 스스로의 젠더 불쾌감과 관련된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이 있습니다. 공통점을 알게 되고 상대방의 젠더에 대해 상대방 스스로 결론을 낼수 있게 됩니다. 이 암묵적 동의는 상대방이 자신의 젠더를 탐험하도록 도와주는 것을 금지하지 않습니다. 그저 상대방에게 젠더를 부여하는 것을 금지할 뿐입니다. 더 간단히 말하자면, 매트릭스가 무엇인지는 누가 말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보여 줄 수 있을 뿐인 겁니다.
분명히 에그 프라임 디렉티브를 따르지 않는 트랜스인들이 있을 텐데요, 하지만 저는 그런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이 규칙은 저 자신을 포함해 트랜스젠더 공동체 전체를 하나로 묶는 유일한 요소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저는 한때 무엇보다 외부의 인정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진정한 수용이 오직 제 안에서부터만 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트랜스젠더인지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자신 뿐입니다.
여기서 모순인 점이 있습니다. 가장 벽장속에 있는 트랜스인은 자신의 내적 목소리를 전혀 신뢰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평생 동안 세상이 자신을 보는 모습과 자신이 스스로를 보는 모습 사이의 끊임 없는 괴리감을 느끼며 살아가다 보면, 결국 "자신이 누구인지"를 다른 사람이 말해주도록 의지하는 것이 더 쉬워집니다. 비록 내면 깊은 곳에서는 삶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어떤 근본적인 사실을 놓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더라도, 타인의 목소리보다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오늘 제 목표는 제가 저 스스로를 받아들일수 있도록 도와준 약간의 정보와 사고의 틀을 나누는 것입니다. 저는 당신이 트랜스젠더인지 아닌지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이 스스로 걸어볼 수 있는 길 하나를 가리켜 줄 수는 있습니다. 저는 정답을 알려드릴순 없지만, 올바른 질문들을 던지는 시도를 해볼 순 있습니다.
상대가 스스로 자신에게 의문을 품어본 적이 없다면, 설령 100% 확신하고 있더라도 상대에게 트랜스젠더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안전하지 않습니다. 젠더 불쾌감에 대해 설명해 줄 수도 있고, 상대의 감정과 자신의 감정 사이의 공통점을 보여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상대방에게 “당신은 트랜스젠더입니다” 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왜냐하면 대부분 상대방은 여러분을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면화된 트랜스혐오는 우리가 트랜스젠더인 것이 불가능하고 트랜스젠더인 것이 부정적이고 혐오받아야 할 것이라고 우리 모두에게 주입시켜왔습니다. 가정 내 혹은 성장 과정에서 비롯된 압박은 자신을 받아들이는 일을 극도록 어렵게 만들 수 있습니다.
아직 스스로 의문조차 품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 트랜스젠더인것 같다고 말하는 시도는 자기방어 기제를 작동시킵니다. 그 사람의 잠재의식은 이 말을 적극적으로 거부하려고 하고, 알려주려는 시도가 그 사람을 벽장 속으로 더 깊이 밀어넣을 뿐 아니라 그런 말을 했다는 이유로 당신에게 적대감을 보이게 할 수도 있습니다. 많은 트랜스혐오자들은 자신의 젠더에 대한 내적 갈등과 싸우고 있다는 명백한 징후를 보이며, 자기 보호 차원에서 트랜스혐오적이었던 과거를 가진 트랜스인들 역시 드물지 않습니다.
설령 상대방이 여러분의 말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깨닫게 두지 않고 말해 버렸다는 사실 자체가 상대방의 자기 의속 속에 틈을 만들어버립니다. 만들어진 틈은 상대방이 자신의 불쾌감에 대해 의심을 품게 할 수 있고, 이런 생각이 암시된 것이거나 자신 스스로가 트랜스젠더라고 믿도록 심리적으로 조종당했다고 믿게 될수도 있습니다. 누군가가 자신이 트랜스젠더인지 알게 되는 유일한 안전로는 자신 스스로 깨닫는 것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트랜스젠더인 것의 핵심 목적은 자기 결정과 자아 실현에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그들이 트랜스젠더라고 말하는 행위는 명백히 그 사람이 태어났을 때 행해졌던 강제적 지정과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스스로 알아내도록 돕고 싶다면,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불쾌감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려주고, 이 사이트로 안내하며, 상대방이 경험하는 것들이 시스젠더인이 일상적으로 겪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도록 방법을 제공해주세요.
물론 상대방이 먼저 "내가 트랜스젠더라고 생각해?"라고 묻는 경우는 예외입니다… 그렇다면 더이상 프라임 디렉티브 원칙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저는 젠더 치료에 대한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 않았다는 점을 이해해 주세요. 이 글은 전적으로 저 자신의 비전문적인 조사와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대부분은 저 자신의 여정(journey)이나 다른 트랜스여성들과 자신의 젠더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과 나눈 대화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제가 30대 초반에 트랜지션한 상당히 이분법적인 트랜스여성으로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도 명심해주세요. 저는 아직도 많은 트랜스젠더 경험에 무지합니다. 여러 다른 트랜스여성 뿐 아니라 트랜스머스큘린이나 논바이너리인에게도 다를 수도 있습니다. 이 글은 보편적인 전문가 가이드로 의도된 것이 아닙니다. 그저 제가 공유할 수 있는 최선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대부분의 시스젠더인은 자신의 젠더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보세요
이미 자신의 젠더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면, 설령 그게 “내가 트랜스젠더일까?” 라고 구글에 검색해보다가 검색 결과를 보기 전에 노트북을 덮어 버린 정도라 할지라도, 축하합니다. 이미 대부분의 시스젠더인이 평생 동안 하는 것보다 자신의 젠더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해본 것입니다.
저는 많은 수의 시스젠더 친구들에게 자신의 젠더 정체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물어본 적이 있는데, 열에 아홉은 그런 적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시스젠더인은 지속적으로 소녀가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다른 몸으로 깨아났다면 얼마나 좋을지에 대한 공상을 하지도 않습니다. 몸이 바뀌는 영화에 대해 생각하며 심장이 두근거리지도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출생 시 지정된 젠더와 다른 젠더의 몸에 태어났다면 어땠을 지 상상해 본 적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이러한 생각은 잠깐 스쳐 지나가는 수준이거나 순전히 지적인 사고 실험에 그칩니다.
여기에는 에너지가 없습니다. 적어도 그들에게는 그렇습니다. 만약 자신이 젠더에 대해 생각할 때 묘한 종류의 에너지를 느낀다면, 그것은 아마도 무언가를 의미하고 있을 겁니다.
대부분의 시스젠더인은 자신의 출생 시 지정 젠더인 상태를 적극적으로 좋아한다는 점을 생각해보세요
처음에는 저도 이 사실을 믿기 어려웠지만, 시스젠더인은 실제로 자신의 젠더를 즐깁니다! 시스남성은 남성인 것을 좋아하고, 시스여성은 여성인 것을 좋아합니다. 시스젠더인은 몰래 “반대” 젠더, 젠더리스(genderless)한 존재, 혹은 다른 젠더 그룹의 멤버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미 확인했듯이, 그들은 애초에 자신의 젠더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복잡한 지점들이 있습니다. 많은 시스 남성들은 독성적 남성성(toxic masculinity)이 숨 막히고 끔찍하다고 느끼며, 자신의 젠더와 연결된 문제적인 사회적 요소들에 적극적으로 거부하곤 합니다. 많은 여성들은 여성혐오, 가부장제, 그리고 전통적인 젠더 역할의 폭정에 깊은 좌절을 느끼곤 합니다. "남성인 것을 즐긴다"는 것이 항상 내셔널 풋볼 리그가 아닌(non-NFL) 상황에서 감정을 꾹 눌러 담는 일을 좋아한다는 의미는 아니고, "여성인 것을 즐긴다"는 것이 남성 직장 동료들에게 낮춰보이는 대우를 받거나 끊임없이 "그래서, 결혼은 언제 할거야?"라는 질문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런 것들을 모두 극복하더라도, 시스젠더인들은 여전히 자신의 젠더를 즐깁니다. 자신의 젠더가 사회에서 수행되는 특정 요소들이 달랐으면 좋길 바랄 순 있지만, 시스젠더인들은 바꿀 기회가 오더라도 여전히 자신의 지정 젠더를 지키기로 선택합니다. 안타깝게도, 벽장속에 있는 많은 트랜스인들은 시스젠더인이 자신의 젠더에 대해 답답하고 문제적인 측면들에 대해 불평하는 것을 듣고, 모두가 자신들처럼 자신의 젠더에 대해 은근한 불만을 가지고 있다고 추측하곤 합니다.
벽장 속에 있는 트랜스인들은 "내가 남자인 것이 싫지 않아"가 "내가 남자인 것을 즐겨"와 같다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얼마나 많은 스스로 의문을 품고 있는 여인들이 "내가 남자인 게 싫지 않으니까 나는 트랜스젠더가 아니야"라는 말을 조금씩 다르게 하고, 이어서 자신이 남자로 보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수가지 작고 작은 요소들을 설명하는지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자신의 젠더가 벗을 방법을 찾을 수 없는 젖은 양말인 것 처럼 말이죠.
아마 놀라실지도 모르겠지만, 저 역시 스스로 커밍아웃하기 전에는 남자로 보이는 것을 적극적으로 싫어하진 않았습니다. 남자로 보이는 것이 저에게 끊임없는 비참함의 원천이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게 그저… 제 모습이었고, 단순히 견디며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던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남자로 보이는 것이 적극적으로 상처가 될 때에만 트랜스젠더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보통 이런 감정은 트랜지션을 시작하고 마침내 진정으로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기 전에는 찾아오지 않습니다. 자기 수용 이전에, 자신의 출생 시 지정 젠더와 자신과의 관계는 고통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단절감에 더 가깝게 느껴질 가능성이 큽니다.
제가 벽장 속 트랜스여성들이 “음. 나는 남자인게 싫지 않고, 남자는 수많은 사회적 특권을 가지고 있잖아. 내가 여자가 될 것이라고 선택할 것 같진 않아. 설령 선택할 수 있더라도, 남성으로서의 특권을 포기하고 싶지 않거든.” 과 같이 말하는 것을 얼마나 많이 보았는지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남성 특권(male privilage)는 실재합니다. 물론, 이는 남성들이 남성인 것에 대한 영원한 불편함을 견뎌내야 하는 것의 대가로 받는 보상은 아닙니다. 남성들은 남성인 것을 즐기고, 사회적 특권이 없더라도 남성들은 남자인 것을 즐길 것입니다. 남성성에 대해 마음에 드는 것이 남성 특권 뿐이라면, 그건 아마 어떤 의미를 시사하는 걸지도 모릅니다.
젠더 불쾌감이 아직 자기수용을 하지 않은 트랜스여성에게 있어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점을 생각해 보세요
4년 동안, 저는 제가 젠더 불쾌감을 경험하지 않았기 떄문에 트랜스젠더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아주 틀렸던 겁니다.
제가 불쾌감을 겪고 있다고 깨닫지 못하게 했던 점이 있다면, 이는 물고기가 자신이 물 속에서 헤엄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유와 같습니다. 그저 제 삶이 항상 그래왔고, 항상 불쾌감을 느끼는 것이 인간의 정상적인 상태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저는 제가 어딘가 조금 우울하고 남들과 꽤나 다르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남성성에 대한 제 경험이 최소한 약간은 젠더 비순응적 이었다는 점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불쾌감으로 부터 오는 고통을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른 채 매일 매일 겪고 있었던 겁니다. 아무리 기분이 나쁘더라도, 언제나 이것이 젠더와는 전혀 관련없는 일이라고 설명할 만한 그럴듯한 이유를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젠더 불쾌감이 자기 수용을 한 트랜스여성과 그렇지 않은 트랜스여성들에게 있어서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저는 항상 젠더 불쾌감이라는 것이 거울을 봤을 때 소녀 대신 소년이 마주보고 있다는 데에서 오는 괴로움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감정을 트랜지션을 시작하기 전에는 실제로 느껴보지 못했습니다. 자신이 소녀인 것을 깨닫기 전에는 거울 속에서 소녀를 보지 못한다는 이유로 괴로울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 수용 이전에, 불쾌감은 훨씬 더 미묘하고 다양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제가 자기 수용 이전 불쾌감에 대한 제 경험에 대해 쓴 내용이 있습니다. 이 글이 있는 에세이는 제가 쓴 에세이 중 가장 유명한 에세이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젠더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다면 이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길 강력히 추천합니다.
시스젠더 귀무가설에 대해 생각해 보세요
수학에서 귀무가설이란 거짓임이 입증되기 전까지는 참이라고 가정되는 것을 말합니다. "유죄가 입증되기 전까지는 무죄이다"는 것과 같은 기본 원칙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를 살인 혐의로 유죄 판결하려 한다면 정황상 증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압도적인 물증, 자백, 혹은 그 밖의 명백한 유죄의 징표가 필요합니다.
나탈리 리드(Natalie Reed)가 쓴 이 훌륭한 글은 우리 사회에서 시스젠더인 것(트랜스젠더가 아닌 것)이 귀무가설처럼 취급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모두 출생 시 지정 젠더일 것으로 가정되며, 자신이 트랜스젠더임을 증명하기 위해 압도적인 증거가 필요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가 시스젠더라고 가정하게 됩니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이는 어느 정도 타당합니다. 왜냐하면 아마 세상에는 트랜스젠더인보다 시스젠더인이 더 많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젠더 정체성에 편안함을 느끼고 이러한 의문을 품지 않습니다. 만약 자신이 이 자아 발견(self-discovery)의 단계까지 이르렀다면, 완전히 시스젠더가 아닐 가능성이 꽤 높을 것입니다.
시스젠더 귀무가설(Null HypotheCis)은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저울에서 손을 떼어냈을 때, 여러분이 트랜스젠더일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나는 시스젠더다"와 "나는 트랜스젠더다"라는 두 가설에 같은 무게를 두고, 트랜스젠더임을 증명해야 한다는 부담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어떤 것이 더 맞다고 느껴지나요? 만약 자신이 트랜스젠더임을 입증해야 할 떄와 같은 방식으로 자신이 시스젠더임을 입증할 증거를 찾는다면, 때로는 모든 환상이 무너지기도 합니다.
소녀/소년이 되고 싶다면, 이미 자신이 소녀/소년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세요
정말로 그렇게 단순한 이야기입니다. 남자는 남자가 되기를 원하고, 여자는 여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남자가 되고 싶다면, 여러분은 남자인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여자가 되고 싶다면, 여러분은 여자인 것입니다. 만약 그 어느 쪽도 되고 싶지 않거나, 둘 다이고 싶거나, 때로는 여자이고 때로는 남자이고 싶다면, 여러분은 아마 젠더플루이드(genderfluid) 혹은 논바이너리(nonbinary) 스펙트럼 어딘가에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그렇게 그냥… 할 수는 없잖아요!"라고 여러분이 말하는 게 들리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말로 그렇게 해도 됩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이것이 여러분 스스로에게 답해야 할 유일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소녀가 되고 싶고 여러분이 항상 자신을 남자로 여겨 왔다면, 아마도 여러분은 소녀로 살아갈 때 더 행복해질 가능성이 큽니다. 트랜지션이 여러분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지 알아보기 위해 몇 걸음이라도 시도해 보는 것이 충분히 해볼 만한 일이 아닐까요?
스스로를 의심한다고 해서 자신이 트랜스젠더일 가능성이 부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 보세요
수년 동안, 아니 수십 년 동안, 저 조차도 제가 트랜스젠더가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진짜” 트랜스젠더인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흔들림 없는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억압에 맞서 자신을 자신의 모습인 여성으로 대우해 달라고 요구하는 청소년 트랜스여성의 허구적인 이미지를 내면화하였던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트랜스젠더인 것의 모습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용기, 대담함,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흔들림 없는 확신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으니, 제가 트랜스젠더일 리 없다고 여겼습니다.
알고 보면 실제로 트랜지션 이전부터 이런 것들을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 대부분은 자기 의심 속에서 여정을 시작합니다. 그런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 보통은 시간이 지나면서 찾아오지만, 이는 몇 달 혹은 몇 년에 걸친 자기 수용 과정이 필요할 수 있고, (최소한 저의 경우에는) 호르몬 치료와 사회적 트랜지션 형태의 추가적인 확정을 통해서야 가능하였습니다.
하지만 초기에는, 우리 모두 스스로의 젠더가 혼란스러운 난장판이라고 느낍니다. 우리는 자신의 퀴어 정체성을 주장할 만큼 충분히 트랜스젠더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고, 당연히 트랜지션할 만큼 트랜스젠더적이지 않다고 느낍니다.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것인지 걱정하고, 자신이 너무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하며, 지금껏 스스로를 지켜 주던 작은 누에고치 같은 안전한 세계 밖으로 나서는 일이 인생에서 가장 큰 실수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을 느끼고 있다면,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제 심리 상담사도 "내가 충분히 트랜스젠더인가"라고 묻는 것이 너무 흔한 나머지 사실상 이것이 트랜스젠더인 것의 증상이라고 농담을 하곤 합니다. 자신의 젠더 정체성에 의문을 갖지 않고서는 그것을 알아낼 수 없으며, 자기 의심은 그 과정의 정상적인 일부일 뿐입니다.
자신의 트랜스젠더 여정이 인정되고, 유명한 이야기에 맞아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세요
대중 문화는 사실상 이야기할 가치가 있는 트랜스펨(transfeminine)의 서사가 단 하나 뿐인 것처럼 만들어 왔습니다. 그것은 아주 어린 나이에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는 어린 트랜스 소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그녀는 유년기부터, 인형놀이나 티 파티에 끌립니다. 언니의 드레스를 입어보고 엄마에게 화장품이나 액세서리를 사 달라고 조르는 모습입니다. 겉모습 역시 항상 소녀처럼 보입니다. 여성적인 얼굴 특징, 작은 체구, 마르고 중성적인 외모 말입니다. 만약 어린 시절이나 청소년기에 트랜지션하지 못했더라도, 성인이 되어서도 어떻게든 여성처럼 보이는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늘 크로스드레싱을 하고 다니며, 때로는 드랙퀸일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남성에게 끌릴 것이고, 한때 잠시 성노동을 했던 경험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는 타당하고 흔히 나타나는 트랜스젠더 서사입니다. 저는 이런 것들을 일부 혹은 모두 경험한 소녀들을 아주 많이 알고 있습니다. 결국 그렇기 때문에 이런 서사가 반복해서 들려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아는 대부분의 트랜스여성들 대부분은 이렇지 않습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장난감 자동차, 비디오 게임, 너프건 같은 것들과 함께 전형적인 남성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그들 중 상당수는 한 번도 크로스드레싱을 해본 적이 없고, 드랙 문화에 어느 정도 거부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들 중 상당수는 큰 체격, 넓은 어깨, 덥수룩한 수염을 가진 채 성장했습니다. 그들 중 상당수는 남성에게 전혀 끌림을 느끼지 않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양성애자이거나 범성애자이기도 합니다. 그둘 중 상당수는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 이전까지 자신의 젠더에 대해 진지하게 의문을 품지 않기도 합니다. 그들 중 상당수는 과거에 트랜스젠더인 "징후"가 없기도 합니다. 그저 평생 자신이 남자라고 받아들이며 살아왔을 뿐입니다. 더 이상 그렇지 않게 될 때까지요.
이 역시 흔한 트랜스젠더 서사이지만 아무도 이 서사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저와 같은 이러한 유형의 트랜스여성은 지난 몇 년 사이에야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씩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전에는 어땠을까요? 여러분이 들을 수 있었던 이야기는 앞에서 제가 설명한 단 하나의 서사 뿐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트랜스젠더 서가 "옳은"것처럼 보이고 이러한 서사는 "틀린"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희같은 소녀들은 정말로 흔합니다. 2003년에 발표된 한 과학적 연구 (읽으신다면 시대에 뒤떨어진 표현에 주의해주세요) 는 수십 년 동안 트랜스여성을 대상으로 함께 연구해 온 한 연구자의 관찰을 설명합니다. 그녀의 경험에 따르면, 트랜스여성에는 크게 세 가지 뚜렷한 집단이 있는데, 그중 두 집단은 제가 설명한 "나는 늘 알고 있었다"는 경로를 따르는 반면, 한 집단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녀에 따르면 "세 번째 그룹"에 속하는 트랜스여성들은 전형적인 남성 유년기를 보냈고, 트랜스젠더인 보통의 징후를 보이지 않고, 비교적 늦은 시기에 커밍아웃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크로스드레싱을 하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글허지 않으며, 대신 보다 미묘하고 내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불쾌감을 다루며 살아가기로 선택합니다. 제가 의문을 가지던 시기에 이 논문을 읽고 저와 같은 다른 트랜스여성이 많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얼마나 인정받았다고 느꼈는지 모릅니다.
저는 또한 저희 같은 트랜스여성들이 지금 더 많이 커밍아웃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에는 훨씬 더 많은 미디어 묘사와 자료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1991년, 심지어 2011년에도 트랜지션에 접근하는 길은 험난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트랜스젠더인 사람들을 한 명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 세상에서는 트랜지션을 선택한 사람들은 트랜지션을 하지 않는 것이 그저 불가능한 사람들 뿐었습니다.
2021년의 지금은 단순히 자신의 젠더에 대해 고민해 보기 쉬워진 것 뿐 아니라, 트랜스젠더 공통체, 호르몬, 그리고 그 밖의 다른 중요한 정보에 접근하는 것 역시 훨씬 쉬워졌습니다. 만약 제가 30년 정도 더 뒤에 태어났더라면, 저는 10대 때 트랜지션하였을 겁니다. 처음으로 자신 스스로에게 진정으로 질문할 수 있도록 자유와 자료를 갖게 된 순간이라면, 자신이 "항상 알고 있었는지"의 여부를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자신을 수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들이 자신의 정체성과는 아무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세요
제가 자신의 젠더에 의문을 가지고 있는 트랜스여성에게 이야기 할 때마다, 대화는 결국 트랜지션을 선택했을 때 마주하는 장애물들로 이어지게 됩니다. "트랜지션하기에는 내 키가 너무 큰지/내 몸이 너무 큰지/털이 많은지/ 외모가 부족한지 걱정돼요"라는 두려움은 정말 흔합니다. "가족이 나를 버리면 어떡할지/내 파트너가 날 떠마녀 어떡할지 걱정돼요"도 많이 듣게 되는 걱정입니다. 어떤 소녀들은 자신의 커리어, 교육, 혹은 대학 생활에 미칠 영향에 대해 많이 걱정합니다. 많은 이들이 자신이 호르몬 치료나 트랜스젠더 수술의 의료 비용을 감당하지 못할까봐 두려워 합니다.
모두가, 정말 모두가, 사회적으로 트랜지션하는 과정을 감당할 수 있을지 스스로를 의심합니다. 친구에게 커밍아웃 하는 것, 여성복을 입는 것, 트랜스혐오에 맞서는 것… 이 모든 과정은 두렵고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특히 주로 회복 탄력성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벽장 속 트랜스여성들에게 그렇습니다. 그 전체 과정이 만성적으로 압도적이라고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두려움은 종종 스스로를 게이트키핑(gatekeeping)하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내가 절대 예쁜 소녀가 될수 없을 것 같아 두려워."는 "내가 트랜스젠더면 안된단 말야. 내가 트랜지션한 후에 충분히 예쁘지 않으면 어떡할거야?"로 변해 버립니다. 이는 객관적으로 보면 다소 비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자기 수용 이전의 트랜스 소녀들은 자신이 사실은 트랜스젠더가 아니라고 스스로를 설득하기 위해 무엇이든 할 것입니다. 저 역시 실제로 호르몬 치료를 시작하고 매일 여성처럼 옷을 입고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가 절대 트랜스젠더가 아니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 일은 용기 있는 사람들이 하는 거지, 저같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러므로 저는 트랜스젠더일 리가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는 왜 우리 스스로에게 이런 일을 하는 걸까요? 저는 이것이 결국 자기 보호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트랜지션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기 떄문에, "내가 트랜스젠더인가?"라는 질문을 마주하려고 하기 전에 세상에서 가능한 모든 다른 것들을 시도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진실을 강하게 밀어내는 아주 강한 자기방어적인 목소리를 만들어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만 그 다음에 따라오는 두려움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설령 자신이 트랜스젠더라고 해도, 반드시 그 사실에 대해 어떤 행동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트랜지션을 적극 추천하긴 하지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가능합니다. 이름도, 대명사도, 지금의 삶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혹은 몇 가지만 바꾸고, 가능한 곳에서 작은 젠더 행복감을 조금씩 즐기며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기억해야 할 중요한 점은, 여러분의 정체성에 대한 진실은 여러분이 가진 모든 희망과 두려움과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내면이 소녀라면, 여러분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가족이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의료적 트랜지션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있는지, 혹은 의료적 트랜지션을 원하고 있는지 조차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체성은 이 모든 것과 분리된, 정신적이고 영혼에 관한 문제입니다. 당신이 소녀라면, 당신은 소녀입니다.
그러니 거기서부터 시작해보세요. 그것에 대해 무엇을 할지와 관계없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아내보는 겁니다.
이런 것들로 막막함을 느끼는 의문을 품고 있는 트랜스여성과 이야기할 때마다, 저는 항상 가능하면 이런 사회적인 요인들을 배제하려고 노력합니다. 저는 대신 이런 가정적인 질문들을 할것 같습니다:
앞에 자신의 젠더를 영원히 바꿔버리는 마법의 버튼이 주어졌습니다. 이 버튼은 여러분에게 여러분의 나이, 건강 상태, 그리고 매력도가 지금과 동일한 “반대 젠더의” 몸을 줄 것입니다. 버튼을 누르는 순간, 여러분의 삶 속 모든 사람들은 처음부터 여러분을 소녀로 알고있었던 것이 됩니다. 사람들은 여러분을 바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파트너, 직장, 가족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이 버튼을 누르시겠습니까?
참고로 시스젠더인은 이 버튼을 누를 생각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음 속 깊이 이 버튼을 누를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여전히 자신이 트랜스젠더인 것을 수용하기 두렵다면, 이는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보다는 트랜지션의 두려움과 더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단순히 페티시일 뿐"인 경우는 거의 드물다는 점을 생각해 보세요
저를 포함해서, 얼마나 많은 트랜스인들이 자신의 젠더와 관련된 감정을 성적 판타지의 영역에서 탐색하기 시작했는지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 현상이 나타나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이 방식에는 파트너와의 젠더화된 플레이, 변신과 관련된 그림을 즐겨 그리는 것, 소년이 소녀로 바뀌는 이야기를 읽는 것, 온라인 포럼이나 메신저 앱에서 파트너와 젠더 전환 판타지 역할놀이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런 콘텐츠는 아주 많으며, 이를 즐기는 많은 사람들이 저와 같이 벽장 속에 있던 트랜스여성입니다.
곰곰히 생각해 본다면 이는 꽤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성(sex)은 인간 경험 중에서도 정체성과 관련된 더 큰 질문들과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아도 젠더를 탐색해 볼 수 있는 몇 안되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말 정말 오랜 시간동안 두 가지를 머릿속에서 완전히 분리해 둘 수 있습니다. 가끔 여자로 변하는 상상을 즐기는 남자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게 곧 트랜스젠더라는 뜻은 아니라고 말이죠!
안타깝게도, 이런 방식으로 젠더를 탐색하는 것은 트랜스여성들에게 있어서 오히려 자기 수용을 더 어렵게 만들기도 합니다. 저 역시 자기 수용 이전의 저 역시 자기 수용 이전의 시절에는 이러한 성적인 탐색이 꼭 필요하다고 느꼈지만, 이는 동시에 제가 저의 침습적인 젠더와 관련된 생각이나 공상을 "반순히 페티시이다."라고 치부하게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그것들을 더 깊이 들여다봐야 할 무언가가 아니라, 숨겨져 있고 부끄러운 것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이 문제는 "자기여성애(“autogynephilia)"라는 용어로 더욱 복잡해졌습니다. 자기여성애는 괴짜 심리학자인 레이 블랜차드(Ray Blanchard)가 제시한 트랜스혐오적인 가짜 "이론"입니다. 자기여성애는 자신을 트랜스여성이라고 스스로 정체화하는 많은 사람들이 사실은 전혀 여성이 아니고, 여성이 되는 것이나 음문을 가지는 생각에 성적으로 흥분하는 이상한 남자들이라고 제시하였습니다. 블랜차드의 주장에 따르면, 트랜지션 과정 전체가 그저 정교한 페티시 놀이이며, 트랜스여성들이 이를 세상이 참여하도록 강요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자기여성애는 말도 안되는 주장입니다. 이 이론은 실제 과학자들과 연구자들에 의해 수차례 정말 많이 비판되어 왔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 이론의 핵심 목적은 시스젠더인들이 트랜스여성을 남성 성범죄자처럼 바라보도록 만드는 데 있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다행히도 대부분의 시스젠더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대부분은 블랜차드나 자기여성애에 자체에 대해 들어보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벽장 속 트랜스여성은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품는 과정에서 이런 내용을 접하고, “음. 내가 그냥 자기여성애를 가지고 있는 걸까? 아무래도 나는 사실 트랜스젠더가 아닌가봐.” 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경향은 자신의 젠더와 관련된 감정을 성적인 맥락에서 표현해 왔던 트랜스여성들에게 특히 더 강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특히 여성이 되는 상상으로 성적인 흥분을 느끼는 경우라면 더더욱 강하게 나타납니다.
이런 성적 흥분의 감정은 훨씬 더 긴 에세이의 이 작은 영역에서조차 완전히 풀어내기 어려운 복잡한 주제이지만, 이 감정이 초기 단계에서 매우 흔하게 나타나고 트랜지션이 진행될수록 점점 약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중 일부는 오랫동안 젠더 행복감과 성적 흥분을 묶다보면, 두 감정이 일부 겹쳐서 표현되는 것에 관련이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진정한 젠더로 인식되거나 그 진정한 젠더로서 성적 즐거움을 경험하는 것이 아주 좋은 감정을 느낄수 있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단순한 성적 흥분을 넘어선 더 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이건 "그저 페티시"가 아닙니다.
트랜스젠더 정체성의 넓은 스펙트럼을 생각해 보세요
공개적으로 퀴어인 사람들이 있는 커뮤니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 본 적이 없다면, 자신의 젠더를 경험하고 표현하는데 얼마나 많고 다른 방법들이 존재하는지 완전히 내면화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세상은 "남성"이라는 상자와 "여성"이라는 상자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고, 그 사이에 거대한 빈 공간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젠더를 표현하는 방식에는 두 상자의 안팎을 모두 포함해 거의 무한한 수의 방법이 있으며, 여러분의 젠더가 그 정의되지 않은 공간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꽤 이분법적인 트랜스여성으로서, 소녀라는 상자 안에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제가 젠더를 이해하는 방식이나 제가 그것을 표현하기로 선택하는 방식은 소녀라는 상자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를 때가 많습니다.
트랜스젠더인 데에는 올바른 방법이 없습니다. 어떤 트랜스인은 외적 표현은 바꾸지만 대명사는 바꾸지 않습니다. 어떤 트랜스인은 자신의 이름과 대명사를 바꾸지만 외적 표현은 바꾸지 않습니다. 어떤 트랜스인은 자신이 내면에서 누구인지 알고 있다면, 출생 시 지정 성별로 살아가는 것도 괜찮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많은 트랜스인은 젠더 확정 수술이나 호르몬 치료를 받지 않기도 합니다. 많은 트랜스인은 상황에 따라 자신이 어떻게 인식되기를 원하는지에 따라 다른 이름과 대명사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많은 트랜스인은 단순히 시스젠더 중심성(cisnormativity)에서 약간 벗어난 자신만의 젠더 관계를 만들어 내고, 깃발을 꽂고, 마무리 할 수도 있습니다.
많은 트랜스인은 처음에는 한 가지 방향으로 트랜지션을 시작하지만, 최종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이 시작했을 때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다른 모습과 더 잘 맞는다는 것을 꺠닫기도 합니다.
이 모든 방식은 유효하고, 저는 이 모든 내용을 포함시켜서 여러분의 부담을 덜어드리려고 합니다. 자기 수용이 또 다른 불가능한 기대들의 거대한 짐을 떠안는 일처럼 느껴진다면, 자신을 트랜스젠더로 받아들이는 일은 훨씬 더 어려워집니다. 사실, 트랜스젠더인으로 살아가며 느낄 수 있는 큰 즐거움 중 하나로는 젠더가 무엇일 수 있고 무엇일 수 없는지에 대한 모든 좁은 생각들로부터 실제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자신의 젠더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리든,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것입니다. 다소 느끼하게 들릴 수 있지만, 젠더와 젠더 표현의 맥락에서 어떤 것이 즐거움을 주고 그렇지 않은지 솔직해질 수 있도록 스스로를 허락하는 일은 때로는 아주 급진적인 행동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여정은 여러분의 출생 시 지정 성별에서 더 큰 편안함을 느끼는 방향으로 이끌 수도 있고, 논바이너리나 젠더플루이드와 같은 정체성으로 향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혹은 언젠가 저처럼 소녀라는 상자 속으로 오게 될지도 모릅니다. (여기에는 컵케이크도 있어요!)
무엇을 선택하든, 그것이 여러분을 더 여러분답게 만들어준다면 해도 괜찮습니다.
트랜지션이 절대적인 형이상학적 진실을 찾아내는 것보다는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에 더 가깝다는 점을 생각해 보세요
제가 스스로 의문을 품고 있는 트랜스여성과 이야기 할 때 자주 마주하는 걸림돌 중 하나는, 많은 이들이 두려움 때문에 스스로를 멈춰 세우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자신 안의 복잡한 방정식을 풀어내고, 의심의 여지 없이 자신이 100%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완전히 받아들이기 전까지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안타깝게도, 그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합니다. 특히 자신의 젠더를 확정하는 어떤 행동도 아직 해보지 않은 상태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트랜스젠더인지의 여부를 확인해 줄 혈액 검사나 뇌 스캔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명확한 증거를 얻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자기 수용을 시작한지 몇 주 혹은 몇 달이 지난 뒤에 “오늘은 남성으로 표현하면서도 괜찮은 하루였는데, 그럼 나는 사실 트랜스젠더가 아니라는 뜻일까?” 말한 소녀들을 정말 많이 봐왔습니다.
(답을 말하자면: 아닙니다! 저 역시 소년 모드로 지내면서 좋은 하루를 보낸 적이 많습니다. 그래도 저는 여전히 소녀입니다.)
그렇기에, 자신이 풀어야 할 퍼즐이 아니라고 기억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자신의 젠더를 완벽한 분류체계로 규정할 의무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저 자신만의 복잡한 바람과 욕구, 꿈, 목표, 두려움, 상처, 트리거(trigger), 그리고 그 밖의 수많은 것들을 지닌 한 인간일 뿐입니다. 여러분은 모순적이고 복잡하며, 수많은 면을 지닌 비논리적인 존재입니다.
조금 무섭게 들릴 수도 있지만, 다행히도 이는 어느 정도는 해방감을 주는 말이기도 합니다. 트랜지션에는 “적절한” 타임라인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의 목록도 없습니다. 이름을 유지해도 되고, 바꿔도 됩니다. 젠더 확정 수술을 받아도 되고, 지금의 몸 그대로 살아가도 됩니다. 매일 드레스를 입어도 되고, 아니면 그건 저에게 모두 맡기셔도 됩니다. 어떤 트랜스젠더인 숙녀들은 옷을 살 수 있을 만큼 나이를 먹자마자 여성처럼 입을 수도 있지만, 저는 제가 호르몬 치료를 시작한 지 세 달이 되기 전까지 완전히 여성적인 차림을 입어본 적이 없습니다. 여기에 규칙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런 규칙들은 수백년 전에 죽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것들일 뿐입니다.
또한, 당장 무언인가를 결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트랜지션 과정은 거대한 심연으로 한 번에 뛰어드는 일이 아니라 작고 자발적인 일련의 단계들입니다. 초기 단계의 대부분은 충분히 되돌릴 수 있으며, 여러분의 삶을 더 낫게 만들것 같지 않을 거라고 생각되는 일은 할 필요 없습니다. 발밑만 바라보고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큰 고비를 넘겼을 겁니다.
자신의 젠더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루 종일 머리 속에서 더 많은 증거가 스스로 나타나기를 기다리기 보다는 작은 한두 가지를 직접 시도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팔, 다리, 가슴을 면도해 보세요. 매니큐어를 발라 보세요. 여성복 한 벌을 사 보세요. SNS에서 여성 이름과 she/her 대명사로 부계정을 만들고 디지털 세상에서 소녀로서 활동해 보세요. 믿을 수 있는 친구 한두 명에게 자신이 스스로의 젠더에 대해 고민중이라고 말하고, 자신을 따로 개인적으로 이야기할 때 다른 이름/대명사로 불러달라고 요청해 본 다음 어떻게 느껴지는지 보는 것도 좋습니다. 호르몬 치료의 초기 몇 달은 되돌릴 수 있으니, 에스트로겐이 자신의 마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시험해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이 과정 중 일부는 압도된다고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사실, 상상만 해도 압도될 수 있습니다. 동시에 과정 속 어딘가에서 작고 작은 강렬한 행복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아, 아, 아!! 이거 마음에 드는 것 같아. 느낌이 좋아!!” 라고 느껴지는 순간들 말입니다.
그게 젠더 행복감이며, 여러분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이런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어디로 향하든, 큰 행복감과 즐거움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